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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게임 이야기

진하야리가미 - 평행의 평행

일본에는 다른 나라에는 볼 수 없는 게임 장르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게임의 갈라파고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독특한 게임 장르 중에는 소설계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일본 내에서 많은 팬층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비주얼 노벨 혹은 사운드 노벨은 글과 그림으로 스토리를 나열해가며, 단지 배경음악에 신경 썼는가 혹은 삽화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가에 따라 비주얼인지 사운드인지가 나뉘는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이 장르를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비주얼 노벨들의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게임들이 있을 것입니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게임들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이런 소설계 작품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장르의 기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카마이타치의 밤은 추리게임이기 때문이지요.

하야리가미시리즈 역시 이러한 추리게임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하야리가미를 그답게 만드는 것은 이 추리가 과학과 오컬트의 경계선을 오간다는 점이겠지요. 진하야리가미는 이러한 하야리가미시리즈의 특징을 계승하려고 한 채 배경 설정만을 새로운 도화지로 옮겼습니다. 진하야리가미는 추리게임의 탈을 쓴 괴담 게임입니다. 형사의 입장에서 오컬트 적으로 보이는 사건을 수사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일반적인 상식의 부분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개 자체는 재미있는 소재입니다. 오컬트에 대한 과학과 오컬트적인 관해는 맹인의 코끼리 묘사와 같으며, 어느 의도로 접근하였는가에 따라서 현상은 같아도 결론은 전혀 다르게 되기 때문에 이 둘의 사이를 왔다 갔다면서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진하야리가미는 이러한 입체적인 접근을 포기함으로써 많은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전혀 다르게 나누어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단 설명이나 상식상으로 설명 가능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치밀한 모습을 보이나 반대로 오컬트적인 부분에 대해서 상상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흔히 오컬트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의 접근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급작스러운 교통사고와 같이 정체를 모를 어느 것에 대한 막연한 피해와 그에 따른 경외감, 그리고 나머지가 나름대로 인과응보와 원칙이라는 일반적 상식의 도구를 통한 오컬트에 대한 이해의 접근. 보통 오컬트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접근 방법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영화 링에서 사다코의 저주 비디오를 보고 죽음의 공포에 처한 이들이 사다코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녀와 그녀의 주변에 얽힌 비극적인 사건을 알게되고 저주의 실체에 대해 그려나가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따라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여된 오컬트 루트에서의 결말은 반전은 있으되 많이 찝찝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이 전개 부분에서 무리하게 끝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악령에 의해서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 도시전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보여주고 설명을 하려고 시도해야 하며, 그 과정이 바로 괴담 이야기의 본질임에도 불구한데도 이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이해를 포기합니다. 이를 통해 오컬트는 그냥 이유 모를 사건이 되어버렸으며, 형사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사활동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는 오컬트 분야인 좀비 아포칼립스를 제외하고선 이 게임의 오컬트 이야기는 상상력의 빈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반대로 과학적인 루트에서도 과학적인 설명에 집중한 나머지 본질을 벗어났습니다. 도시전설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의 본질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 여겼다는 것이 실제로는 일반 상식 수준의 범위에서 진행된 이야기라는 깨달음입니다. 선형적인 이야기에서 군데군데 구멍이 난 부분을 상상력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오컬트로 보이게 되었다는 괴담은 오히려 오컬트로의 접근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상식으로도 설명 가능한 도시전설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납치 감금 이야기에 스너프라는 요소를 추가했다는 이유만으로 과학적인 루트라고 한다면 감정묘사 외에는 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하야리가미는 단순한 추리 소설광이 아닌, 비주얼 노벨이라는 장르를 즐길 수 있는 게이머라면 한 번쯤 즐길만한 게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나의 현상을 여러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 이 단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여러 가지 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같은 캐릭터들이 다른 현상에 직면했을 때 보여주는 행동이 달라진다는 장점으로 승화됩니다. 

어느 스토리에서 수동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캐릭터는 극한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바뀌게 되며 이는 용의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역전시키게 됩니다. 사건을 추리하는 대신 인물의 역할에 대해서 추리를 하게 되는 순간 진하야리가미는 그 자체가 지닌 매력을 발산하게 되는 것이지요.

게임이 평행선을 그린다는 점은 입체적인 접근을 막는 요인이긴 하지만 반대로 주인공 일행이 아무런 편견 없이 각 주제를 접근 가능하다는 장점 또한 줍니다. 진 엔딩의 무거운 분위기 이후로 이어졌다면 이야기들은 지금과 다른 전개로 나아갔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후에 리뷰 할 진하야리가미 2에서의 개그 루트는 해당 게임의 비판 요소 중 하나입니다. 진지하게 이어지는 분위기를 중간에 있는 시나리오 하나가 망쳤단 것이죠.

따라서 개그 루트를 소화하는 데 있어서 평행적인 이야기 전개가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실질적인 이야기라 부를 수 있는 진 엔딩은 결정지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게이머로 하여금 보다 편안한 마음에서 이야기를 즐기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미 정사는 정해졌고 다른 루트는 이 설정에서의 다른 상상력을 보는 것이다보니 막장으로 치닫아도 용인이 되는 것입니다.

커리지 포인트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선택지를 고르는데 있어서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게 하며, 커리지 포인트가 붙은 대사를 다시 음미해 보면 사키의 입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생각할 수 있어서 또 다른 재미를 줍니다. 또한 이 게임에서 주인공의 심리게임으로 묘사되는 라이어즈 아트는 진하야리가미만의 오리지널이며, 추후 발매된 진하야리가미 2에서도 쓰일 정도로 매력적인 시스템입니다. 

마치 역전재판의 반론을 보는 것 같은 이 시스템은 선택지만 고르는 기존의 비주얼 노벨이 좀 더 집중하게 만들게 됩니다. 비록 이번 편에서는 질문과 그 결과가 어긋나는 경우도 있어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시스템 자체는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하야리가미의 추리 로직 자체는 추리물의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게이머의 이해 정도를 확인하는 테스트의 시스템과 가깝습니다. 결국 추리물로서의 시스템은 그리 부각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컬트 추리물을 기대했던 게이머에게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이 게임 자체는 현상에 접근하는 각 캐릭터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물들의 감정 묘사에 더 큰 재미를 느낀다면 진하야리가미는 그런 게이머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평행의 세계에서 시간여행을 한다고 해서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죠. 그러한 의미에서 평행하게 놓여있는 이 게임의 분기 트리는 진하야리가미가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그 평행의 평행을 잘 보여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